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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權魯甲 1930년 2월 28일 - )은 대한민국정치가이다. 1930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상고를 거쳐, 동국대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직후부터 목포상고 4년 선배 김대중을 돕기 시작하여, 김대중이 정치에 입문하자 자연스럽게 그의 참모역을 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후 김대중의 조직과 자금책을 하면서 정계에 깊게 발을 들여놓게 되고,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사건때도 함게 보안사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 김대중이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김대중을 대신해 민주화추친협의회 의장대리를 하면서 김대중 계보의 국내관리자 역을 하였다. 그리하여 역시 김대중의 참모역을 한 한화갑과 함께 "양甲"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으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목포를 지역구로 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14대, 15대에서도 각각 평화민주당의 후신인 국민회의 공천으로 당선되었다. 1997년 한보사태가 터지자 정태수 한보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났고 김대중 정권 출범이후 특사로 감형되었다.

이후 공식적인 지위는 없었지만 여권내에 심어놓은 인맥에 의해 동교동계의 2인자로서 권력을 행사했고, 여러 경로로 여권에 들어온 정치자금을 여러 정치인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맡아 "정거장"이라고 일컬어졌다. 이러한 행각이 국민에게 부정적으로 비쳐 여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였으므로, 2001년 정동영을 비롯한 여당의 소장파 정치인들이 당에서 권노갑의 영향력의 배제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기도 하였다.

2002년 이른바 진승현게이트에서 국정원 차장 김은성을 통하여 진승현의 불법자금을 받은 것으로 혐의로 다시 구속되었으나 2003년 항소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후 정계에서 한발짝 물러난채 영어공부를 하면서 동시통역사에 도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김대중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펴낸 자서전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되는 삶이 아름답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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